"하나님, 나를 이로 만들어 주세요. 그러면 바둑이 털 속에 꽉 붙어 있다가 살펴볼 수 있잖아요. 너무 궁금해서 숙제도 잘 할 수 없어요. 우리 바둑이가 밤중에 뭘 하나 하고 자꾸자꾸 생각했더니 변비에 걸렸단 말이에요." <바둑이는 밤중에 무얼 할까?>의 주인공 현호가 하나님께 두 손 모아 드리는 기도이다. 일등 하고 싶단 것도 아니고, 컴퓨터 사 달라는 것도 아니고. 소원치고는 참 시시하고 엉뚱하다. 노경실 선생님의 동화가 늘 그렇듯이 이 책에서도 이처럼 소박하고 꾸밈없는 주인공 현호가 등장한다. 강아지가 사람처럼 모험을 하는 '똘똘이의 모험'이란 만화책을 읽고는, 우리 집 강아지도 내가 잘 때는 사람처럼 다니는 건 아닐까 하는 호기심 때문에 잠을 못 이루는, 정말 못말리는 꼬마 아이다. 드디어 하나님이 이 간절한 소원을 들어 주기는 해서 이로 변했지만, 이제 또 사람으로 되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 두려움에 현호는 발발 떤다. 이 책 <바둑이는 밤중에 무얼 할까?>는 좁쌀 만한 이로 변해서 바둑이 등에 올라탄 현호가 밤 10시부터 밤 12시, 새벽 2시, 새벽 4시, 그리고 아침이 되어 다시 사람으로 변하기까지의 하룻밤의 신나는 모험 이야기이다.
주인들이 다 잠든 시간에는 학교에 가서 선생님한테 수업을 받기도 하고, 동네에서 설쳐 대는 도둑 고양이들과 한판 대결도 벌이는 바둑이는 또 산동네에서 어렵게 사는 다른 강아지들을 돌봐 주고, 내려오는 길에 교회에 들러 기도를 하며 눈물까지 흘리는 감동을 주기도 한다. 여기저기 똥 싸대기, 신발 물어뜯기가 취미이자 특기인 바둑이한테 저렇게 용감하고 의리있는 면이 있었던가! 현호는 정말 이 밤중에 자기 눈앞에 펼쳐지는 일들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매일같이 바둑이를 발로 뻥뻥 차고 괴롭히던 현호가 바둑이와의 하룻밤 여행을 끝내고는 '이제 다시는 바둑이를 차지 않겠다.'고 맹세를 하는데, 과연 며칠이나 지킬 수 있을까? 58년 개띠인 작가 노경실 선생님은 강아지라면 지나가다가도 꼭 한번 만져 주고 가야 할 만치 강아지를 좋아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강아지와 말도 해 봤다는 작가가 정말 행복한 마음으로 단숨에 쓴 동화이다. 하룻밤 여행이 주는 모험과 스릴이 판타지 형식을 닮았다면, 강아지가 벌이는 사건들은 그대로 사람들의 생활과 너무 닮아 있고, 짖궂지만 때묻지 않은 아이의 심리가 사랑스럽기만 한 생활동화이다.
이 동화의 치밀한 시간대별 구성과 통통 튀는 이야기 재미는 화가 이형진 씨의 재기발랄한 그림과도 잘 맞아떨어져서, 밤새 바둑이 등짝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매달려 있는 이로 변한 현호의 표정과 동작, 또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둑이지만 슬픔과 기쁨, 분노와 동정의 표정 등을 생생하게 잡아 내었다. 무엇보다도 책 곳곳에 숨겨둔 이형진 씨만의 위트 넘치는 그림들을 찾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예를 들면, 바둑이를 차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현호의 멘트 옆에는, 배역이 바뀌어 바둑이가 현호를 발로 차고 있는 그림이 나온다. 또 '가족을 이루고 살지 못하는 강아지들이 불쌍하다.'라는 내용에선 오히려 푹신한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뼈다귀 표지 그림의 책을 보는 아빠 개와 카펫 위에 뒹굴거리며 텔레비전을 보는 새끼 개들이 등장하여 단란한 개 가족을 보여 주는 식이다.
총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