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드라마 ‘주몽’이 끝났다. 그 드라마 덕분인지 초등학생들도 주몽이 누구인지는 다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그 주몽 이야기가 지금으로부터 약 천 년쯤 전에도 지금처럼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고려 시대 문인이자 신흥사대부였던 이규보는 그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세상 사람들은 신기하면서도 기이한 동명왕의 일을 많이 말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평범한 남녀들이라 하더라도 그 일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다.” 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공통된 화두가 있었다는 사실은 정말 흥미롭다.
주몽 이야기가 그토록 오랫동안 사람들 사이에 회자될 수 있었던 아마도 다양한 인물들이 펼치는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주몽 이야기가 단지 재미있기만 한 이야기일까? 이규보도 처음에 주몽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재미있는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맛에 빠지고 그 근원을 찾아보니 신이하고 성스러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안에는 우리 조상들의 자유로운 생각과 풍부한 상상력이 장엄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펼쳐져 있다. 그래서 이규보는 주몽 이야기를 장편서사시「동명왕편」으로 남겨 후세에 전한다.
이 책 『동명왕편-변신과 수수께끼의 신화, 주몽 이야기』는 시와 이규보의 주해로 이루어져 있는 원작「동명왕편」의 형식을 그대로 살려 최대한 아이들이 원작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한문으로 쓰여 읽기 어려운 원작 시와 설명을 덧붙여 놓은 이규보의 주해는 김풍기 선생님이 읽기 쉽게 풀어 놓았다. 그리고 그 속에 숨은 의미와 상징, 관련된 신화, 더 넓고 깊게 생각해 볼만한 것들을 다양한 시각으로 살펴보았다. 이 책을 통해 옛사람들의 생각과 상상력을 만나고 그것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내면 안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천상과 지상, 물속을 넘나들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야기
하백은 해모수에게 제안했다. “그대가 천제의 아들이라니 뭔가 신통한 재주가 있겠지. 한번 시험해 봅시다.” 말을 마치자마자 하백은 잉어로 변하여 푸른 물속을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그러자 해모수는 수달로 변하여 날렵하게 잉어를 쫓았다. 하백은 재빨리 꿩으로 변신해 하늘로 푸드득 날아올랐다. 해모수 역시 물 밖으로 뛰어오르면서 매로 변했다. 신령스러움이 묻어나는 당당한 매였다. (본문 40-41p 이규보의 주해 중에서)
사람이 다양한 동물로 순식간에 변신하면서 쫓고 쫓기는 승부를 겨루는 이 장면은 무척 흥미진진하다. 「동명왕편」은 이처럼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짜릿한 긴박감을 맛볼 수 있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활쏘기로 재주를 겨루고, 재치 넘치는 속임수로 상대방을 속이기도 하며, 알 듯 모를 듯한 수수께끼로 한껏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 뿐이 아니다. 해모수는 순식간에 화려한 궁궐을 세워 깜짝 놀라게 하고, 하백은 유화의 입술을 잡아 당겨 길게 늘여 놓고, 주몽이 하늘에 도움을 청하자 물고기와 자라들이 머리와 꼬리를 나란히 이어 다리를 놓아 주는 등 신기하고 다채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해모수, 하백, 금와, 주몽, 송양 등으로 대표되는 북방 부족들 간에 벌어진 다양한 사건과 일화를 상징과 은유로 환상적으로 풀어 낸 이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어느 새 신화 속의 한 사람이 된다.『변신과 수수께끼의 신화, 주몽 이야기 동명왕편』에서는 이규보의 주해 부분을 김풍기 선생님이 다시 풀어 써 이러한 극적 구성을 풍부한 묘사와 함께 잘 살려 냈다. 또한 힘이 느껴지는 일러스트로 보는 즐거움까지 더했다.
이야기 속의 다양한 의미와 상징을 찾아서
한편 주몽은 부여를 탈출할 때 세 명의 벗과 함께 떠난다. 왜 하필 세 명일까? 하백의 딸도 유화, 훤화, 위화 셋이었다. 우연히 같은 걸까? 우리 옛이야기에는 세 가지 소원, 세 가지 유산, 세 가지 보물, 삼 형제 등 유난히 3이 많이 등장한다.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환인, 환웅, 단군이 그렇고 동명신화에 등장하는 해모수, 주몽, 유리 또한 세 명이다. 또 단군은 지상에 내려올 때 세 개의 천부인을 가지고 삼천 명을 이끌고 신단수로 내려왔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져 있는 까마귀도 발이 세 개다. 옛날 사람들은 3을 가득 찬 숫자, 즉 완전한 숫자로 생각했다. 왜 3을 완전한 숫자로 생각했는지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신화 속에 등장하는 3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무의식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가위바위보를 삼세 번 하는 것도 무의식 중에 이런 생각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본문 81p 김풍기 선생님의 해설 중에서)
동명왕의 아버지 해모수는 하늘에서 내려왔다. 단군도 하늘에서 내려왔으며, 박혁거세 역시 하늘에서 내려온 말이 놓고 간 알에서 태어났다. 왜 우리나라 신화의 위대한 인물은 모두 하늘에서 내려왔을까? 또 박혁거세와 같이 동명왕 주몽도 알에서 태어났다. 알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일 뿐일까? 아니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주몽은 활쏘기를 잘했다고 하는데, 고대 사회에서 활쏘기는 어떤 의미일까? 이처럼 신화를 읽다 보면 수많은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렇게 신화를 읽어 나가다 만나는 의문들을『변신과 수수께끼의 신화, 주몽 이야기 동명왕편』에서는 다양한 시각으로 풀어내고 나아가 더 새로운 의미를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했다. 이 책을 통해 신화를 읽는다는 것이 아주 오래된 언어와 문화의 수수께끼를 푸는 아주 흥미롭고 새로운 경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선이 살아 있는 동양화로 만나는 우리 신화
「동명왕편」은 고려 시대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문장가 중에 한 사람인 이규보의 작품으로 현재 전하고 있는 우리 신화 중에서 가장 분량이 길고 내용이 다채롭다. 『변신과 수수께끼의 신화, 주몽 이야기 동명왕편』에서는 이렇게 높이 평가 받고 있는「동명왕편」의 문학성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먹선의 느낌이 살아 있는 동양화 일러스트로 의미와 상징을 그려 냈다. 또한 우리나라 신화 관련 사진뿐만 아니라 관련된 그리스, 이집트, 중국 등 다양한 신화 사진 자료도 함께 구성하여 좀더 폭넓은 시각으로 의미를 확장하고 창조할 수 있도록 했다.
총 
멀티플라이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