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로 밀려온 가방에서 오래된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책장마다 온통 이끼가 끼여 있었고, 쥐가 갉아먹은 자국투성이였다. 그림이 있는 쪽만 멀쩡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책 속 주인공들이 하나씩 나타나 환상과 모험으로 가득 찬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맨 처음 보물 지도를 손에 넣은 빌리 본즈, 용감한 짐 호킨스와 외다리 해적 롱 존 실버. 모두들 ‘뼈다귀’ 섬에 묻힌 보물찾기를 꿈꾸었다.
어린이를 위한 모험 소설의 전형 19세기는 세계사적으로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 팽창이 한창이던 때였다. 그런 시대 분위기 탓이었을까. ≪로빈슨 크루소≫ ≪걸리버 여행기≫ ≪톰 소여의 모험≫ 등 굵직굵직한 모험 소설이 당대를 장식했다. 그렇게 100년이 지나는 동안, 영국에서만 해도 모험 소설이 무려 1만여 편 넘게 발표됐다. 그 와중에 1883년 ≪보물섬≫이 나왔다. 어른을 대상으로 쓴 이전 작품과 달리, ≪보물섬≫은 처음부터 어린이를 위해 썼다. 원래 제목은 ‘바다의 요리사’였다. 그러던 것을 ‘보물섬’으로 제목을 바꿔 영국 어린이 신문 에 연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번 <세계명작 그림책>의 ≪보물섬≫은 동화 속에 ‘현실’이란 색을 살짝 입혀 놓은 그림책이다. 즉 현실과 허구가 급격한 장면 전환 없이 자연스레 넘나든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주인공이 바닷가에서 발견한 고서적을 펼치면서 시작한다. 거기에 놀랄 일은 책 속 인물들, 즉 빌리 본즈, 트렐로니, 짐 호킨스, 존 실버가 책 밖으로 살아나온 것이다. 그러고는 자기가 겪은 일을 하나하나 들려준다. 그러자 놀랍게도 이야기는 원작 ≪보물섬≫을 한 줄로 꿰고 있었다! 모험 소설은 주인공이 갖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가운데 스스로 성장하면서 목적을 이룸과 동시에 질서를 바로잡는다는 전형성을 띤다. 그런데 R. L. 스티븐슨이 쓴 ≪보물섬≫을 읽으면, 그런 전형을 넘어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 현실에서 출발해서 현실로 돌아오는 모험과 그 모험의 주인공은 아이. 이것이 이 소설의 핵이다. 그래서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 소년 짐 호킨스의 활약상이 시점을 흐리게 하지 않고 펼쳐진다. 이 때 어른들은 그다지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 범선을 구입하고 다친 이를 치료하는 정도랄까. 결국 짐 때문에 보물을 찾게 된다. 맨 처음 보물지도를 손에 넣은 이도 짐이요, 해적들의 음모를 알아 낸 이도 짐이다. 그렇다면 ≪보물섬≫이 전 세계 어린이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는 까닭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흥미진진한 줄거리에 뛰어난 캐릭터 설정과 실감나는 묘사가 아닐까. 즉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음모와 다툼 따위 갖가지 사건이 정밀하게 교차하며 박진감 넘치게 전개된다는 점이다. 단순히 보물찾기에 그치지 않고, 보물찾기를 둘러싼 배신과 음모가 시종일관 긴장감을 증폭시키며 흘러간다. 또한 등장 인물들의 개성이 저마다 독특해서 무척 인상적이다. 침착하고 용감한 주인공 소년과 바다를 닮아 거칠면서 순수한 뱃사람들. 특히 해적 존 실버는 주연보다 빛나는 쟁쟁한 조연급 스타다. 실버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과 카리스마가 있다. 짐과 실버의 대결도 오히려 실버의 또다른 매력으로 작용한다. 해적으로서도 실력파다. 명석한 두뇌로 치밀한 계획을 세워 반란을 주도하고 살아남기 위해 동료 해적들과 짐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협상에 능하면서도 등을 돌려야 할 때 확실히 등을 돌린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냉철하게 원하는 바를 관철시키는 힘도 있다. 짐 호킨스의 말마따나 ‘미워할 수가 없는’ 해적이다.
총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