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더 이상 국민국가가 아니다 ―미국, 그 마지막 제국 세계의 다른 모든 나라가 그러한 것처럼, 대한민국 역시 미국을 빼고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은 우리에게 해방자이자 정복자이고, 동반자이자 경쟁자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어떤 이미지로 다가오느냐에 따라 사대친미적 태도를 취하고, 어떤 사람은 무조건적인 반미를 말한다. 친미와 반미라는 이분법적 분류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일상 속에서 장갑차에 깔려 죽은 2명의 여중생 문제, 북한 핵문제를 비롯해 하루에 몇 번씩, 큰 문제든 작은 문제든 미국과 대면하게 된다.
《아메리카―미국, 그 마지막 제국》(휴머니스트)은 세계 안의 미국을 들여다보면서 우리 안의 미국을 좀더 면밀하게 성찰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우리의 내일을 제대로 설계하려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의 존재를 파악해내야 한다. 동서냉전이 끝나고 국민국가의 경계를 허무는 세계화와 정보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이제 미국은 유엔 회원국의 일원인 ‘국민국가(nation-state)’의 하나가 아니라 ‘제국(empire)’이 되고 있다. 로마제국, 신성로마제국 이후 시민혁명을 통해 역사 저편으로 사라졌던 ‘제국’이 역사의 잿더미 속에서 다시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미국을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고 헤매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제국’을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동일한 ‘국민국가’의 하나로 생각했던 것이다. 제국에는 제국의 작동방식이 있을 뿐이었다. 현재 세계의 중심은 워싱턴 한 곳뿐이다. 정치·군사·경제·도덕 등 모든 것이 미국식 잣대로 재단되고, 미국이 말하는 것이 곧 인류의 보편적 진리가 된다. 이런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한 미국은 곧 세계의 법이다. 따라서 국제법이든 다자간 협정이든 미국의 주권에 제한을 가는 것은 그 무엇이건 간에 미국은 지키지 않고 있다.
교토협정을 깨고 리히텐슈타인, 버뮤다 같은 탈세의 천국을 허용하지 말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결정도 무시한다. 존 볼튼 전미국무차관의 말처럼 “제국에는 국제법이 같은 것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국제 시스템에 자기의 룰을 강제화할 수 있는 것이 ‘제국’과 ‘국민국가’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인정하든 않든 이제 우리는 제국의 작동 방식을 파악해야만 할 때가 되었다.
아메리칸 제국의 힘의 근원은 어디에 있으며, 다국적 기업과 할리우드 영화, 제3세계 독재정권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제국’ 건설의 도구로 어떻게 사용되었고, 냉전이 끝났음에도 왜 냉전체제는 여전히 존속하며, 강한 중국의 등장을 미국은 왜 막으려고 하는지, 그리고 이런 것들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결될 것인지를 《아메리카 ― 미국, 그 마지막 제국》을 통해 넓게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정보와 기술의 힘을 휘두르면서 상냥한 억압 또는 즐거운 독재체제를 구축한다. 더군다나 문화산업을 지배함으로써 우리의 상상력까지 가로채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세계 지배력은 한층 더 강력해진다. 미국은 우리들의 뇌를 침공하기 위해 트로이 목마를 파견하고 있다. 미국이 만들어낸 대중매체의 영웅들이 바로 트로이 목마다.…… ―본문 51쪽, 〈미국이 파견한 트로이 목마〉(이그나시오 라모네)
독일,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지식인 50여 명이 분석한 미국 ―아메리카 슈퍼 파워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1년 12월 25일 소비에트가 해체됐을 때, 세계는 민주정부와 법치국가, 인권의 시대가 우리 곁에 더욱 가까이 도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1년 9월 11일 ‘테러’가 발생함으로써 모든 것이 달라져버리고 말았다. 9·11 이후 미국에서는 ‘제국의 이데올로기’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언론인과 학자들은 서슴지 않고 미국과 고대 로마를 동일시하고 있다.
《아메리카―미국, 그 마지막 제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세계의 지식인 50여 명의 ‘미국’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그나시오 라모네(프랑스 르몽드 디플로마딕 사장), 조셉 나이(하버드대학 교수), 벤자민 바버(루저스대학 월트휘트만 센터 소장), 조나단 프리드랜드(영국 가디언 기자) 등이 21세기의 새로운 핵심어인 ‘제국(Empire)’이라는 시각으로 ‘미국’을 새롭게 진단한다. 특히 영국 저널리스트인 조나단 프리드랜드의 글은 “지금의 미국은 이전의 미국과 전혀 다르며, 따라서 옛날 생각으로는 지금의 미국과 미국의 대외정책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없다.”는 주제인데, 이 글은 2002년 9월 19일 BBC방송에 보도되어 세계인의 주목을 끌었다.
“모든 사람들이 ‘아메리카 모델’에 반대한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아메리카 모델을 모방하는 데에 여념이 없다.” 미국 스탠포드대학에서 불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르네 지라르가 ‘미국의 세계의 오늘’을 한마디로 집약해서 하고 있는 말이다. 싫어하면서도 닮고자 하는 대상이 미국이고, 그 속에 미국의 정신적 파워가 있다. 미국과 세계화, 아메리카 파워에 대해 프랑스 신문 〈리베라시옹〉에 하고 있는 이야기들도 이 책에 담겨 있다. 그리고 노엄 촘스키(MIT 교수), 장 마리 뱅상(파리8대학 교수) 등은 인터뷰와 대담으로 9·11 이전의 미국과 이후의 미국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로마의 제국 경영 교훈의 제1조는 군사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세계가 제국의 군사력을 알고 이를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다. 제국의 힘이 얼마만큼 강한가를 보여 주어 제국의 힘에 대한 공포를 심어 주기 위해 로마는 ‘콜로세움에서의 검투’라는 당시로서의 선전 테크닉을 동원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은 미국의 군사작전을 24시간 현장 중계하는 TV채널과 헐리우드 영화들이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세계를 향해 미국은 너무나 강하므로 어느 누구도 미국에 대항해서 싸울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로마 제국에서 미국이 배우는 두 번째 교훈은 테크놀로지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는 일이다. 로마인들에게는 놀랄 만한 속도로 군대와 보급품 이동을 가능하게 했던 이른바 로마 가도가 있다. 로마의 군대이동과 보급품 공급의 속도는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 와서도 따르기 힘들 정도이다. 로마 가도는 제국의 힘이 어떤 식으로 다른 자를 먹여살리는가를 보여 주는 완벽한 예이다. 당초 군사 목적으로 이뤄진 엔지니어링에서의 기술혁신이 로마를 상업적으로도 살찌게 했던 것이다. ― 본문 22∼23쪽, 〈로마 제국, 아메리카 제국〉(조나단 프리드랜드)
미국의 내셔널리즘, 부시의 세계전략, 그리고 한반도 ―God Bless World! 시몬느 드 보봐르, 알렉시스 토크빌 등 유럽 지식인들은 역사적으로 미국을 꾸준히 관찰해왔다. 그들이 남긴 기행문이나 글을 통해 우리는 미국의 이미지를 그려왔다. 우리가 아는 미국의 이미지는 역사적으로 어떤 계기를 통해 변해오고 있다. 독립전쟁, 남북전쟁, 제1차 세계대전 등. 21세기 들어 미국은 그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9·11 이후 미국은 내셔널리즘이 극성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 매체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영향은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도 여지없이 들이닥치고 있다. 북한이 미국 정부에 의해 ‘악의 축’으로 불린 이후 미국이 세계 문제 특히 동북아 문제에서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하는 것은 우리의 내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점에서 미국에 대한 관심은 이미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 우리 내부 세계의 관심이 되고 있는 것이다.
부시 정부의 세계 전략, 재편되는 동북아질서 등을 통해 미국의 실체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게 된다. 한국의 안병진(미국 뉴스쿨 교수), 최병권(위클리 솔 발행인), 이정옥(가톨릭대 교수) 등은 미국의 신보수주의, 부시 독트린, 그리고 여중생 사망 사건을 계기로 강력한 이슈로 등장한 ‘SOFA 개정’에 대한 글을 게재하고 있다. 이들의 글은 실체와 의식이 하나가 되어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만드는 데에 한 발 더 나아간 시각을 제안하고 있다.
이제 전세계는 네그리가 말했듯이 더이상 외부가 없는 하나의 제국(empire)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미국은 통합된 네트워크의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해 위기를 예방하는 제국적 경찰 노릇을 더욱더 노골적으로 자임하고 나섰다. 이들에게는 사전 선제 공격 논리가 가지는 법적·윤리적인 문제점보다는 제국의 위기를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미래 영화인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예방적 경찰이 현실에서는 더 이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부시 독트린을 만들고 있는 중에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정보기관들이 테러리스트들의 의도를 미리 읽는 기계를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은 부시 독트린에 부시 정부 노선의 전체적 변화가 반영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2000년 대선 캠페인 기간에 부시는 민주당의 지나친 개입주의 외교를 비판하고 먼 이국땅 에서 수행하는 미군의 ‘국가 건설(nation building)’ 임무에 조소를 보냈다. 이는 냉전 이후 제한적 형태로나마 개입주의 정책으로 걸프전을 벌이고 임기 말에는 인도주의적으로 개입했던 자신의 아버지인 부시의 외교노선보다 훨씬 더 고립주의적 노선이라고 평가될 수 있다. 하지만 집권 뒤에 발생한 9·11테러 이후 부시의 외교노선은 클린텀 전 정권보다 훨씬 더 개입주의적인 방향임을 밝히고 있다. ―본문 104쪽, 〈부시 독트린〉(최병권)
오키나와 회의는 2000년 7월에 있었다. 그때 우리는 매향리 사격장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거의 전쟁이나 다름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게다가 미군 범죄 미군 부대의 문제만 거론해도 친북 성행의 단체 혹은 이사로 낙인이 찍혔고, 그러한 낙인만으로도 국가보안법의 저촉이 되는 상황이었다. 남들은 탈냉전을 얘기하는데 우리는 냉전의 빙산 속에서 동태가 되어 한 발작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20세기를 다 보냈다. ……한국인이 미군 문제에 대해 비로소 소리내어 말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자유 우방 국가라고 믿었던 미국이 독재정권과 협력하고 있다는 ‘엄청난 비밀’에 놀라고 분노했다. 한국 민주화 투쟁의 과정에서 미국은 민주주의 가치를 심어주고 독려해준 우방국이었지만 동시에 독재정권에 대한 지원국이었다는 발견이 젊은 청년들을 분노하게 했던 것이다.……힘없는 여성과 어린이에 대한 미군의 범죄를 확인하고 그러한 범죄에 대한 미군 당국의 부적절한 대응을 지켜보면서 한국인들은 정의와 평화는 원조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전쟁의 당사국이었던 일본과 독일에서의 미군의 주둔군 지위가 한국에서 보다 상대적으로 주둔국의 현지민에 대한 배려를 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정의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었다. 1966년에 체결되어 1967년에 발효된 SOFA (주둔군 지위 협정)는 한국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체결된 대전 협정에 근거를 둔 것이다. 따라서 전시 상태를 기준으로 한 이법은 마땅히 평화상태를 근거로 한 법으로 바뀌는 것이 당연하다. ―본문 279∼281쪽, 〈SOFA 개정을 촉구한다〉(이정옥)
휴머니스트의 특별기획 《아메리카―미국, 그 마지막 제국》은 이미 출간된 해외서의 단순 번역물이 아니다. 《아메리카》는 Weekly SOL이 창간((2001. 10. 15)과 함께 연재한 기획 시리즈 ‘아메리카, 아메리카’ 12부를 기초로 하여 지난 9월 휴머니스트 기획회의를 통해 시작되었다. Weekly SOL(주간) 2001년 10월∼2002년 12월 9일까지 13개월 동안 게재된 ‘미국’ 관련 글 100여 편 중 한국사회에 꼭 필요한 시각이나 제언을 담은 70여 편을 엄선하여 재구성하였다.
2002년 6월 13일 미군 장갑차에 여중생 2명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일기 시작한 반미(反美)현상은 80년대, 90년대의 반미(反美)와는 전혀 질을 달리하는 캠페인이다. 7,80년대의 반미운동은 소수의 정치적 의사 표현이었다. 이를 보는 미국의 시각도 ‘무시’하거나 ‘무반응’이었던 것을 떠올리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세기에 들어서면서 일어난 반미현상은 많은 사람들의 광범위한 참여를 기반으로 이어지는 커다란 물결이라고 할 수 있다. 월드컵 이후 우리 사회에 일기 시작한 자긍심과 자신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미국의 대응도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주한미국대사, 부시대통령의 전화 유감표명 등 ‘사과’ ‘유감’의 뜻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런 대내외적 문제들을 앞에 두고 우리에게는 ‘21세기의 미국’이라는 화두가 던져졌다. 이 ‘화두’를 어떻게 받아내 우리 사회의 성숙도와 대미 시각을 새롭게 재구성해 미래를 어떻게 기획해 갈 것인지에 대한 성찰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휴머니스트는 ‘미국’이라는 문제가 한국만이 아닌 전세계의 ‘화두’라고 판단되었다. 세계 각국의 오피리언 리더들은 ‘미국’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런 인식틀에서 미국과 어떤 관계를 맺어가려 하는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에 특정 필자의 주관적인 분석보다는 세계의 지식인들이 미국에 갖고 있는 문제의식, 분석, 관찰, 체험, 경험 등을 생생하게 읽을 수 있는 기획을 위해 Weekly SOL 편집진과 논의하여 2년에 걸쳐 연재된 글들 중에서 엄선, 재구성하였다.
아울러 전세계 지식인들의 원고를 엮어 한국의 출판에서 첫 선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연재를 기획한 Weekly SOL이 영국의 Guardian, 독일의 Berliner Tageszeitung 등 세계 24개국 신문들과 자매관계에 있는 프랑스의 지식인 신문 Le Monde diplomatique과 독점적인 파트너십을 맺으며 세계 진보적인 지식인들과 지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어서 이 네트워크를 통해 해당 저자들의 단행본 출판에 대한 사전 허락을 받을 수 있기에 가능했다.
총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