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역설』은 양순길과 강순임의 관계맺기를 중심 내용으로 한다. 그들이 사랑을 키워나가는 계기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인간들 곁에 붙어 지내는 비둘기들이다. 본래의 상징성이 희석된채 홀대당하는 그 생명체를 통해 그들은 외경스러운 생명의 실체를 감지하는 데 공감한다. 그들은 그 감흥을 각자 자기 표현 방식으로 예술 작품화하는 가운데 둘만의 내밀한 광장을 발견한다. 양순길은 강순이과의 사랑의 힘으로 글을 써나가고 강순임은 양순길과 "양순길의 비둘기"를 만남으로써 그림의 영감을 어든 것이다. 그들은 상대방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예술 세계의 지평 또한 성숙시켜 가는 이상적인 연인들로 등장한다. 이 연인들에게서 특별한 빛을 발하는 또 다른 점은 그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변화해가는 데 자기 존재를 적극적으로 열고 있다느 점이다.
평론가 김윤식과 방민호의 예리한 지적대로 그들의 이러한 변화 과정은 '변증법적 관계'의 양상을 띤다. 강순임은 양순길로부터 자기 예술의 영감을 얻어 변화해 나가면서도 끝내 그를 떠나 자기 예술의 세계로 돌아간다. 궁극적으로 자기 예술세계를 새로이 일구어 가고 지켜 나가는 것은 양순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작가 김준성은 예술과 삶의 관계라는 다소 무거운 제재를 다루면서도 독자들로 하여금 가깝게 만져 볼 수 있는 이야기로 형상화하는 특별한 글쓰기를 이 작품을 토?서 보여 주고 있다. 양순길의 눈을 통해 세심하게 짚어지는 강순임 예술 세계의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그녀는 양순길과 비둘기라는 '구상'의 세계에서 다시 추상의 세계로 그리고 또 다시 추상의 해체로 용기 있게 나아간다. 그녀의 그림은 본원적인 생명을 향한 그리움과 그것으로부터 탈출하려는 몸부림, 그리고 다시 그것에 귀의하려는 노력에 의해 변화해 간다.
그녀는 어떤 외부적 대상을 매개로 획득되는 생명스러움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내부로부터 형성된 본원적인 생명스러움에 힘입어 자신만의 새로운 추상의 단계로 발돋움한다. 한 여성 예술가의 족적이 그녀의 삶과 더불어 모자람 없이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강순임에게 양순길의 비둘기는 순수 그 자체, 생명의 본체, 창조를 위한 염감이다. 양순길에게 비둘기는 인간의 선입견에 구애되지 않는 친교와 관조의 대상이다. 박승규에게 비둘기는 사랑의 상실이며 원한의 대상이다. 아파트 단지의 사람들에게 비둘기는 도시 일상의 건조함을 벌충해 주는 존재이지만 너무 많아도 안되는 기능적 존재이다. '비둘기 역설'이란 비둘기가 그 숭고한 의미를 잃고 하찮은 존재로 전락하게 된 오늘날 우리 문명의 남루함을 드러내고, 그 속에서 두 사람의 남녀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생성시켜 내려는 작가의 의지를 담은 표제일 것이다. 이 소설은 사랑을 통한 예술혼의 고양이라는 독특한 주제를 소설적 재미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그 자체로 김준성이란 작가의 예술에 대한 투혼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총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