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과학 기술은 우리에게 인류 역사상 물질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열어주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우리는 그런 과학 기술의 가공할 만한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한 이러한 상황을 프랑스의 사상가 폴 비릴리오는 "핵 폭탄, 유전자 폭탄, 정보과학의 폭탄"의 그림자가 인류 위에 드리워져 있다고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 핵과 유전 공학, 그리고 정보과학은 인간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지만 한편으로 인류를 한순간에 사라지게 할 폭탄과 같은 폐해를 초래하고 있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지구 환경도 과학 기술의 발달에 따른 인간의 풍요 앞에 신음하고 있으며, 또 인간의 이러한 삶 자체를 수용하는 데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인류의 무지와 억압된 삶을 해방해 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과학 기술이 한편으로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역설적 상황을 초래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에 출간된 {과학 기술 시대의 삶의 양식과 윤리}에서는 인간과 유리된 채 시장의 논리와 과학 기술 자체만을 추구하는 맹목적 과학 기술주의와, 인간의 삶과 과학 기술의 관계성을 살피고 반성하는 윤리적 성찰의 부재를 하나의 원인으로 제시하고 있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설로부터 촉발되어 뉴턴의 역학 법칙에 이르러 정점에 달했던 근대의 과학 혁명 이후 과학 기술의 위상은 진리의 척도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이로부터 모든 문제의 해결 수단으로서 과학 기술을 생각하게 되는 맹신적, 맹목적 과학 기술주의를 초래하게 되었다. 한 예로 최근의 유전자 환원주의처럼 인간의 본성 자체도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며, 인간의 행위의 산물도 결국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며, 앞으로의 인간 미래도 유전자를 통해 조작할 수 있다는 과학 기술에 대한 이러한 맹신은 인간에게 있어 하나의 도구로서 과학 기술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를 지배하는 수단으로서의 과학 기술을 낳게 된다는 점을 이 책은 경고하고 있다. 따라서 과학 기술을 올바른 인간의 삶과 결부된 윤리적 문제로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옳고 그름에 대한 사유를 통해 올바른 인간의 삶에 대해 사유하는 윤리는 과학 기술의 엄청난 발전 속도로 인해 그것이 초래하는 문제들에 대해 항상 사후 약방문 격이었다. 이것은 두 분야의 발전 속도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껏 윤리가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영역에 주로 초점을 맞춰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대의 과학 기술은 그 수행에 있어 엄청난 자금과 조직을 필요로 하고, 때문에 주로 국가와 기업의 통제하에 그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의 파급 효과는 이전과 비교해 범위나 강도 면에서 엄청나게 증대되었다. 이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유전 공학이나 환경, 정보과학의 문제도 개인 삶의 측면에서 접근할 때 문제의 본질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직면한 현대 사회의 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사회나 제도 등 거시적 측면에서 접근하여 한다는 점을 이 책은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윤리적 전제로부터 출발한 과학이 불가피하게 윤리적 문제를 낳는 메커니즘, 즉 인간을 위해서 발달한 과학이 인간을 위협하게 되는 과정을 이 책은 인간 복제, 환경 문제, 정보 윤리, 언론 윤리의 문제 등 구체적 제 분야를 통해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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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플라이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