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는 여러가지 이유에서 중동을 폄하하고 왜곡해 왔다. 하지만 우리는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또다른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낯설기만 하다. 작가는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고 진실을 올곧게 파악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에,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오리엔탈리즘의 실태까지 파악하는 예리함을 보여준다. 일례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페르샤’라고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이름들이 그네들 스스로가 명명한 것이 아니라 서구가 멋대로 붙인 것임을 알고 있는가?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도 중동 당사자들이 아닌 서구의 입장을 받아들이는 우리이기에, 김태권 작가의 노력이 더욱 돋보인다. ‘우리가 우리 이웃 민족을 깎아내리면 깎아내릴수록, 우리 스스로도 자긍심을 가질 수 없으므로’(작가의 말), 서구의 이기적이고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본 중동을 같은 아시아에 속하는 우리가 적절한 재평가 없이 그대로 인지하는 것은 서구의 문화적 하수인이 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십자군 이야기> 2권에서는 ‘무슬림이 바라본’ 십자군 전쟁의 기록을 최대한 발굴하고 인용하여, 우리에게 ‘비록 낯설긴 하지만, 오리엔탈리즘의 굴레에서 벗어난 주체적인 시각’으로 십자군 전쟁을 파악할 수 있게 도와준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자는 다시 그 역사를 반복해서 살 수밖에 없다’는 말은 진리이나, 제대로 된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거기에서 얻는 교훈도 옳은 것이 아니리라. 그 연유로 우리에겐 서구의 시각에서 탈피해 중동을 제대로 바라보는 지침서가 절실하고, 이 <십자군 이야기> 2권이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독자들에게 치열한 자기 반성을 강요하거나 딱딱하고 무거운 것은 아니다. 재미있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친밀한 ‘만화’라는 매체로 구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재기발랄한 만담형 유머로 무장되어 있다. 특히 2권은 십자군 전쟁의 배경을 그린 1권에 이어, 본격적으로 십자군 원정이 시작되는 권수로 이제야 이야기가 본 궤도에 올라 파란만장해진다. 기사들로 구성된 십자군 본대가 동로마 제국에 도착하여 ‘국익을 위해’ 십자군 전쟁을 지원하라고 반강제하는 모습이나, 나라가 어찌되든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에 급급한 동로마의 기득권 세력이나, 명분은 온데간데 없이 각자 실리를 챙기느라 분열하는 십자군 지휘관들, 주요 인물들의 부침과 영욕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므로 손에서 책을 떼기 어려울 지경이다. 힘의 논리에 의한 외교와, 타 문명에 대한 몰이해로 빚어진 십자군 전쟁. 그 속성이 21세기의 중동 문제, 특히 미국에 의한 이라크 전쟁과 놀랍도록 유사하며, <십자군 이야기>에서는 자연스럽게 십자군 전쟁과 현재의 이라크 전쟁을 아울러 이야기한다. 김태권 작가 특유의 만담을 따라 즐겁게 책을 읽고 나면, 새로운 시각으로 중동과 이라크 전쟁, 그리고 십자군 전쟁을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프롤로그 : 이슬람 이전의 ‘중동’ - 옛 이란을 중심으로]는 고대 중동의 찬란하고 수준 높은 문명과 오랜 역사가 서구의 질시를 받아왔음을 꼬집는다. 그래서 프롤로그 1장에서는 중동의 고대 문명을 둘러싸고 대두했던 ‘백인 지배자-유색 인종 노예’라는 ‘백인 문명설’이나, 흔히 호사가들 입에 오르내리는 ‘외계 문명설’에서 인종 차별주의가 얼마나 뿌리깊은지 보여준다. 또한 옛 이란이 얼마나 강성하고 번영했는지를 설명하고, ‘페르샤 전쟁’에 대해 기존의 서구에서 주장한 것과는 다른 시각을 제공한다. 프롤로그 2장은 지중해를 두고 이란과 그리스가 오랫동안 힘겨루기를 하다가 결국 양측 모두 알렉산드로스(= 알렉산더 대왕)와 그 후계자들에 의해 헬레니즘 세계로 통합되는 부분이다. 그 중 이란과 시리아를 지배하며 강대국으로 성장한 셀레우코스 왕조는, 자기네 문화만이 우월하다며 피정복자들에게 억지로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다가, 피정복자들이 독립운동을 벌이는 통에 세력이 약해져 로마에게 망하고 만다. 프롤로그 3장은 로마의 정세가 중동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아왔는가를 그리고 있다. 이란 문제 때문에 암살되었다는 설이 있는 카이사르, 이후의 권력자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그리고 그들을 치고 이집트 및 지중해 세계를 접수한 옥타비아누스에 이르기까지, 로마는 막대한 이권이 걸린 중동을 사사건건 노린다. 끝없는 분쟁과 불안이 중동을 뒤덮고, 그 속에서 이윽고 이슬람교가 탄생한다. [2부 : 돌아온 악몽] 선제 공격을 통해 투르크와 동로마 제국을 견제하고 서유럽과 교회의 우위를 굳히려던 십자군 전쟁. 빈자(貧者)들의 군중 십자군은 가는 곳마다 민간인을 학살하고 재물을 약탈하는 등, 살인 강도 짓을 일삼았기에 투르크 정부군의 반격을 받아 전멸하고 만다. 그러나 은자 피에르와 그 일당은 겨우 살아남아 기사들로 이루어진 1차 십자군 본대와 합류하게 된다. 귀족 출신이자 기사들인 1차 십자군 본대 지휘관들은, 자신들이 동로마 제국 사람들에게 열렬히 환영을 받을 줄 알았는데 기대가 깨지자 난동을 부린다. 이로 인해 동로마 제국은 불안에 휩싸이고, 개혁 정책을 추진하는 동로마 제국 황제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기득권을 지키려고 안달인 관료 귀족층이 그러한 사회의 혼란을 부추긴다. ‘국익을 위한 파병’, ‘우리나라를 침략하여 정권을 주류에게 돌려달라’고 주장하는 기득권층의 모습에서 1,000년 후 우리나라의 현실이 유머스럽지만 씁쓸하게 투영된다. 결국 동로마 제국의 지원을 반강제로 뜯어낸 1차 십자군 본대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 투르크를 침공하고, 군중 십자군에게 큰 승리를 거두어 십자군 자체를 얕잡아보고 있던 투르크를 꺾는다. 그러나 한 때 ‘동방의 여왕’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비옥한 도시, 안티오키아는 성문을 굳게 닫고 장장 8개월 동안 십자군과 대치한다. 십자군은 군량이 떨어져 극심한 기근에 시달리고, 위기에 빠진 안티오키아를 구하기 위해 패배를 모른다는 이슬람의 영웅이 원군과 함께 온다는 소문이 돌자 불안에 떤다. 그 와중에 십자군 지휘관 중 하나인 보에몽 공작이 ‘식인’ 간교로 안티오키아를 함락하고, 그것을 빌미로 안티오키아의 소유권을 강탈한다. 안티오키아를 동로마 제국에 반환하기로 한 약속이 깨져 동로마 제국과의 신뢰도 무너진데다, 곧이어 도착한 이슬람 원군에게 포위당해 목숨이 경각에 달린 십자군. 많은 십자군 병사들이 굶주림과 죽음의 공포 속에 대규모로 탈영하고, 은자 피에르마저 탈영하다 어느 성당에서 붙잡혀 온다. 은자 피에르는 궁여지책으로 녹슨 쇳덩어리 하나를 찾아내, 그것이 바로 ‘롱기누스의 창’이라고 주장한다. 탈영이 아니라 성창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변명인데, 그 ‘성창’의 진위를 두고 십자군끼리도 의견이 분분해진다. 이윽고 벌어진 이슬람 원군과의 전투에서 십자군은 서구의 주장대로라면 ‘성창의 기적’으로 말미암아 대승을 거두고, 안티오키아에 눌러앉은 보에몽을 남긴 채 이스라엘을 원정하러 떠난다. 예루살렘에서도 피의 살육을 벌이는 십자군. 예루살렘의 통치권을 두고 지휘관들의 내분이 벌어진다. 우여곡절 끝에 보에몽은 예루살렘의 통치권도 손에 넣지 못하고, 안티오키아마저 잃어버린다. 쓸쓸히 서방으로 돌아가서 ‘사실은 동로마 제국 황제가 무슬림의 첩자였으므로, 동로마 제국을 침공하자’고 선동하는 보에몽. 이로 말미암아 동로마 제국의 막대한 부를 탐내는 서유럽의 침공이 시작된다!
중고단행본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