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펴내며
프롤로그를 대신하여
- 고구려의 역사, 과연 어느 나라의 역사인가?
제1부 역사는 내 안에서 살아 숨쉰다
- 전쟁통에 사라진 큰형의 편지
- 치유를 통해 완성되는 해방의 역사
- 해방 정국의 역사서를 다시 읽으며
- 박제된 해방을 넘어 축제의 통일로
- 역사의 상처가 키운 '작은 것' 콤플렉스
- 대립의 역사에서 공존의 시대로
제2부 선인들의 삶에 오늘을 비추다
- 같은 뜻을 지녔으되 다른 길을 택한 두 벗
- 비정함과 통찰력의 경계에서
- 세상이 아니라 자신을 바꾸려 한 사람
- 젊은 지식인에게 띄우는 두 가지 가르침
- 결단으로 얻은 고요한 정일의 삶
- 스스로 경계하여 글을 짓다
- 매력적인 너무나 매력적인 영웅
제3부 또 다른 창으로 조선을 바라보다
- 한 나라의 건강성을 지키는 일
- 조선다움을 주도한 인재들의 전당
- 조선을 바라보는 또 다른 창
- 변화를 놓치면 평화가 깨진다
- 예를 넘어서 정체성을 구하다
- 진정한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가
에필로그를 대신하여
- '나'의 발견과 조선 건국사의 새로운 모색
부록
- 올바른 한ㆍ중관계 정립을 위한 한국사 관련 학회 공동 설명책을 펴내며
역사가에게 역사란 과연 무엇인가?
최근 우리나라 사람들은 역사에 열광한다. 대하역사드라마는 물론이요, 고사직전에 있다는 출판물에서조차 역사책은 식을 줄 모르는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 그뿐인가. 일본과 중국 등이 역사를 왜곡이라도 할라치면 전쟁(?)도 불사하고, 정부의 줏대 없음을 질책하면서 그야말로 열광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역사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이 역사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루한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재미난 이야기일까? 아니면 우리 민족의 뿌리의식? 그렇다면 역사 연구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에게 있어 ‘역사’란 과연 무엇일까? 신간 [내 안에 살아 숨쉬는 역사]는 바로 중견 역사학자가 자신의 삶과 연구 과정에서 끝없이 되묻고 있는 바로 이 질문, “역사가인 나에게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이다. 신간 [내 안에 살아 숨쉬는 역사]에서 저자 정두희 교수가 말하는 역사는 무엇인가?
저자에게 역사란 집단적 기억이나 재미있는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역사학도로서의 ‘나의 일’과 진정한 개인으로서 ‘나의 위치’를 찾으려는 노력을 일치시키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신간 [내 안에 살아 숨쉬는 역사]는 그 시작을 “역사전쟁에 임하는 역사학자들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제1부 “역사는 내 안에서 살아 숨쉰다”에서 역사가 개인에게 어떤 의미로 투영되는지를 살피고 있다. 이어지는 제2부와 제3부는 조선 전기 사회사 전공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글들을 싣고 있다. 글을 맺는 부분에서 저자는 조선 건국사에 관한 기존 역사학계의 이론에 대한 정교한 비판을 실어, 신간 [내 안에 살아 숨쉬는 역사]가 단순한 역사가의 시론을 뛰어넘어, 역사학자로서의 반성과 자세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전쟁에 임하는 역사학자들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2003년 12월, 한국사 관련 17개 학회가 동북공정으로 불거진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항의하면서 공동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저자 정두희 교수는 신간 [내 안에 살아 숨쉬는 역사]의 프롤로그를 대신한 글 “고구려의 역사, 과연 어느 나라의 역사인가”에서 항간에 ‘역사전쟁’이라고까지 불리는 고구려사 문제를 학자들이 대처하는 바람직한 방안에 대해서 자신의 견해를 아래와 같이 피력하고 있다. 즉 민족적 감정이 앞서 ‘비분강개’하는 일반인들과 함께 통분하는 것이 전문 역사학자들의 자세는 아니라고 하면서 성숙한 자세를 촉구하고 있다.
역사는 개인에게 어떤 의미로 투영되는가?
저자는 제1부 “역사는 내 안에서 살아 숨쉰다”를 시작하면서, 한국전쟁의 혼란 속에서 소리없이 사라진 자신의 큰형이 남긴 편지 한 통을 꺼내든다. 그리고 그 편지를 통해 우리 역사에서 큰 상처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 한국전쟁이 잉태되던 당시 한 고등학생의 고민을 통해 격동의 역사 현장에서 개인의 역사를 유추하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이탈리아 역사가 카를로 진즈부르그의 저서 [치즈와 구더기]의 주인공 메노키오라는 한 농부의 삶에 대해 언급하며 개인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에둘러 표현한다. 이는 곧 저자의 역사적 관심이 ‘집단적 기억으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개인에게 투영된 역사’라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미국인 학자 힐디 강이 일제시대를 경험했던 사람들에게서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한 구술사 [검은 우산 밑에서]를 통해 개인에게 투영된 역사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그밖에도 해방 정국에 쏟아져 나온 역사책들을 다시 읽으며, 해방을 통해 이루어진 역사의 부활의 의미를 되새기거나([해방 정국의 역사서를 다시 읽으며]), 우리 역사의 상처가 남긴 흉터로서의 ‘작은 것’ 콤플렉스가 우리의 역사 의식을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역사의 상처가 키운 ‘작은 것’ 콤플렉스])을 아주 꼼꼼하게 지적하고 있다.
조선 전기 사회사 전공자의 역사 이해
저자 정두희 교수는 제2부와 제3부에서 자신이 전공한 시대의 인물과 사회상에서 오늘날 우리의 삶에 길잡이가 될 만한 교훈들을 낚아 올린다. 먼저 제2부 “선인들의 삶에 오늘을 비추다”에서는 역사의 갈림길에서 포은 정몽주와 삼봉 정도전이 선택한 서로 다른 길, 그 다른 선택으로 두 인물이 역사로부터 어떤 평가를 얻게 되는지를 시작으로, 태종 이방원의 주도면밀한 철권통치의 실상과 그 의미, 조광조의 책문 속에서 그가 꿈꾸었던 세상 엿보기, 퇴계의 학자로서의 풍모를 알려주는 에피소드, 율곡의 자경문과 지식인의 자세, 충무공 이순신의 삶과 역사에 새겨진 자취 등을 짧지만 깊이 있는 글로 정리하고 있다. 이 글들은 과장된 수사를 동원하지 않고서도 역사 인물의 면모와 그들의 삶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거울이 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어지는 제3부 “또 다른 창으로 조선을 바라보다”에서는 조선시대의 제도와 사회상에서 오늘날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고 있다. 특히 여권의 개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대간제도와 집현전, 과거제도 등은 의미 있는 역사의 거울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려주고 있다. 특히 인재를 키우는 일([조선다움을 주도한 인재들의 전당])과 인재를 등용하는 바른 길([조선을 바라보는 또 다른 창])이 국가의 대계를 결정짓는다는 것을 역사적 사실에서 보여줌으로써, 혼란스럽기만 한 교육정책에 대한 중견 역사학자의 무게 있는 발언은 되새길 만하다. 또한 [변화를 놓치면 평화가 깨진다]는 오늘날 시시각각으로 직면하는 국제관계에서 우리가 취할 바람직한 대응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진정한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가]는 사회적 권위의 붕괴로 인해 점점 아노미 상태로 치닫는 우리 사회에 새롭게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권위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여기에 [예를 넘어서 정체성을 구하다]는 예상 논쟁에 대한 기존의 논의와 부정적 시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우리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을 촉구하고 있다.
조선 건국사에 대한 기존 학설 비판과 역사학자 정두희의 문제의식
정두희 교수는 에필로그를 대신하는 글에서 기존 한국사학계의 주류 이론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즉 해방 이후 지금까지 조선시대사 이해의 준거로 작용하였던 주류 이론, 즉 이우성의 ‘신진사대부 향리기원설’과 이태진의 ‘사림-훈구 2계급론’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이러한 연구 과정을 통해 저자는 “조선왕조가 고려 말의 향리 출신인 신진사대부 출신에 의해 건국되었다고 주장할 수 없다”(245쪽)는 확신을 갖기에 이른다. 이와 마찬가지로 학계에서 정설로 인정받고 있는 ‘훈구-사림 2계급설’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자의 이런 연구 성과는 조선왕조 초기에 대한 당시까지의 학설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신간 [내 안에 살아 숨쉬는 역사]에서 앞선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가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는 필연적 배경까지 살피고 있다. 즉 일제시기 식민주의사학자들이 주장한 ‘한국 사회 정체성론’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소박한 민족주의가 작용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주장을 위해 한국사를 연구하는 미국 학자들인 에드워드 와그너Edward Wagner, 제임스 팰레이James Palais, 마르티나 도힐러Martina Deuchler 등의 연구를 차용하고 있다.
집단적 기억’을 넘어 내 마음에 비친 ‘살아 숨쉬는 역사’를 꿈꾸며
이렇게 신간 [내 안에 살아 숨쉬는 역사]는 한 중견 역사학자의 역사학자로서의 자기 고민과 역사 이해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 안에는 우리 사회에서 역사가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도 있고, 개인에 투영된 역사에 대한 탐구정신도 들어 있다. 기존 권위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도 들어 있고, 역사 속에서 경계, 또는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에 대한 통찰도 들어 있다. 뼈 있는 발언을 하면서도 구호와 같이 큰 목소리는 없다. 그 자리에 우리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과 애정이 담긴 책임 있는 목소리가 자리하고 있다.
중고단행본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