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너나 잘하세요: 자기방어 기제로서의 냉소주의
제2장 빨리빨리: ‘역동성’과 ‘조급성’이라는 두 얼굴
제3장 배 아픈 건 못참는다: 한국형 평등주의의 괴력
제4장 최고·최대·최초: 자존감을 위한 투쟁
제5장 정(情): 가족주의·정실주의·부정부패
제6장 6·25: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제7장 소용돌이: 쏠림의 축복과 저
제8장 서열: 관존민비·출세주의·입장주의
제9장 아버지: 생존을 위한 지도자 추종주의
제10장 목숨 걸고: 단기적 극단, 장기적 중용
맺는말: 왜 우리는 늘 국민을 읽는 데에 실패하는가?
한국인, 그들은 누구인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아니면 전혀 모르면서 그냥 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파란만장한 역사를 겪으면서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는 초고속 경제성장과 인터넷·IT 강국을 이룬 한국인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물고기는 물을 모른다! 그물이나 낚시에 걸려 물 밖으로 나오게 될 때 비로소 물을 알게 된다. 같은 이치로 한국인을 가장 모르는 사람은 한국인이라는 역설도 가능해진다. 자신을 알고 가족을 알고 친구를 알기 때문에 한국인을 잘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래봤자 아는 한국인은 수백 명 수준이다. 마당발을 자랑해도 수천 명이다. 그런 개인 접촉을 통해선 한국인의 실체를 알기 어렵다. 여기서 말하는 한국인은 수백만에서 수천만에 이르는 대집단으로서의 한국인이다. 대집단이 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화학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에 개별적 특성이 곧 전체의 특성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한국인이 한국인을 모르거나 무시하는 건 한국인의 한국·한국인 탐구가 빈약하다는 데에서도 잘 드러난다. 잘 안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탐구를 게을리 하는 것일까?
치열한 세계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한국인의 자기성찰과 실용적인 활용 포인트를 제공한다!
치열한 세계경쟁 체제 속에서 한국인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물론 세계를 알아야 하지만,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이 더욱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한국인이 한국인을 안다 해도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그 앎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책은 단일성과 밀집성이라는 조건 하에서 획일성·집중성·극단성·조급성·역동성이라는 한국인의 5가지 속성이 한국인의 삶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와 그 명암을 보여준다. 그런데 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아는 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지가 더욱 중요하다. 한국인 코드는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정치·경제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성찰과 활용 포인트를 제공할 것이다.
이 책은 자기방어 기제로서의 냉소주의, 빨리빨리 문화, 한국형 평등주의, 최고·최대·최초에 집착하는 자존감을 위한 투쟁, 가족주의·정실주의·부정부패로 드러나는 정(情) 문화, 6·25 심성, 쏠림의 소용돌이 문화, 서열 문화, 아버지 추종주의, 목숨 거는 극단주의 등의 한국인 코드 10가지를 치우침 없이 다루고 있다.
자기방어 기제로서의 냉소주의
“너나 잘하세요”라는 말이 유행이다. 우리의 ‘친절한 금자씨’ 덕분에 날개를 달았지만, 그 말은 이전부터 사용돼 왔다. 아니 언제부터 사용되었건 이 말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인 코드’가 내장돼 있다. 그건 바로 한국인들의 자기방어 기제로서의 냉소주의다.
이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의 ‘편 가르기’ 문화가 요구하는 기본 문법이다. ‘편 가르기’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편 가르기’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다. 문제는 무엇을 중심으로 편을 가르느냐는 기준이다. 한국 ‘편 가르기’ 문화의 특성은 그것이 사람 중심이라는 데에 있다. 한국인들이 워낙 사람을 좋아하는 정(情) 많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갖게 된 문화겠지만, 이는 공공적 차원에선 거의 재앙이다. 자기성찰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너나 잘하세요”는 자기성찰 없는 비판 문화가 드센 한국 사회를 향한 일침이다. 자기방어 기제로서의 냉소주의다.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비리·파렴치·위선 행각이 그칠 줄 모른다. 염치마저 실종됐다. 사회적 명분은 마법의 보자기가 되어 인간적인 추악함마저 가려준다. 인간마저 실종된 것이다. 세상이 두렵다거나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다는 말이 나오게도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이 의존하는 최대의 심리적 방어 기제가 바로 냉소주의다.
역동성과 조급성
한국인은 속전속결을 사랑한다. 밥만 빨리 먹는 게 아니라 빠른 서비스에 목숨을 거는 ‘스피드 마케팅’에도 단연 최고다. 한국인은 서양 것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빨랐지만, 전통문화를 깨부수는 데에도 빨랐다.
한국인의 유별난 ‘빨리빨리’ 기질에 대한 증언은 무수히 많다. 그간 한국인의 ‘빨리빨리’ 기질은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지만, 디지털 시대를 맞아 재평가되었고 이젠 예찬의 대상으로까지 격상된 된 것 같다. 휴대전화, 인터넷, 전자상거래, 디지털 문화가 초고속 성장을 이룬 것도, 한류로 대변되는 한국 대중문화의 성공도 한국인의 ‘빨리빨리’ 덕을 톡톡히 보았다. ‘빨리빨리’는 무엇보다도 빠른 변화에 대한 적응능력을 키웠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황우석 쇼크’는 ‘빨리빨리 긍정론’을 일격에 날려버렸다. AP통신은 황우석의 연구 결과 조작은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버스 기사의 광폭한 운전, 빨리 취하는 폭탄주로 대표되는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빠른 경제성장을 이뤘으나,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등의 부작용도 낳았다는 것이다. 이렇듯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역동성’과 ‘조급성’이라는 두 얼굴이다.
‘빨리빨리 긍정론’이 산업적 논리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처럼, ‘빨리빨리’ 기질도 상당 부분은 ‘압축 성장’이라고 하는 산업적 논리의 산물로 볼 수 있다. 초고속 성장, 압축 성장을 향해 질주해 온 사회적 상황과 한국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던 한국인의 생존조건이 미친 영향도 클 것이다.
한국형 평등주의
한국인의 평등주의는 왜곡된 평등주의다. 정작 집단적으로 힘을 합쳐 이뤄내야 할 평등주의는 외면하고 개인 차원에서 자식 교육 잘 시켜 신분상승 꾀해보자는 식의 평등주의인 것이다. 한국 제1의 부자가 상속세를 제대로 내지 않고 엄청난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줘도 한국인들은 여론조사만 했다 하면 ‘존경하는 기업인’으로 그 부자의 이름을 꼽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다. 왜? 기업경영을 잘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렇게 평등주의가 약하고 대범한 국민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들이 평등주의 정서가 충만해 배가 아파지는 건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옆집 사는 누구에게, 또는 먼 친척 중의 누구에게 아주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뿐이다. 그땐 혈압이 올라가고, “나라고 왜 못해!”라고 외치면서 전투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흔히 강하다고 하는 한국인의 평등주의는 ‘파편화된 평등주의’라고 부르는 게 옳다.
정리하자면 이런 이야기다. 한국인은 동질성과 밀집성으로 인해 강한 평등주의를 갖고 있는 건 분명한데, 그건 개인 차원에서만 발휘될 뿐 사회정책 차원에서는 좀 달리 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목숨 거는 극단주의
한국 특유의 ‘쏠림 문화’는 사실상 ‘극단주의 문화’와 통하는 것이고, 그 덕분에 한국은 여러 영역에서 많은 세계 최고기록을 수립하게 되었다. 대학입시 전쟁의 치열함도 세계 최고요, 유행도 세계 최고다. 인터넷이건 핸드폰이건 뭐든 빠져들었다 하면 세계 최고다. ‘쏠림’이 다른 쪽으로 기울면 세계 최고였다가도 세계 최저로 곤두박질치는 속도도 가장 빠르다. 출산율이 그 대표적 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죽으려고 하면 반드시 살고 살려고 하면 반드시 죽는다). 한국인들이 오늘날에도 즐겨 암송하는 충무공의 명문구다.
충무공을 워낙 존경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늘 비상상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한국인처럼 ‘목숨 걸고’나 ‘목숨 바쳐’를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도 없을 게다. “사랑만은 단 하나의 목숨을 걸었다”, “이 생명 다 바쳐서 죽도록 사랑했고”, “사랑이 외로운 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지” 등의 대중가요 가사가 말해주듯 한국인은 사랑에도 목숨을 건다. 아마도 이게 일본 여인들을 매료시킨 한국 남성 스타의 파워일 게다. 평화로운 시기에 나오는 신문 사설과 칼럼들에 늘 ‘목숨’이라는 단어가 난무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한국인의 극단주의는 ‘목숨’이라는 단어의 오남용으로 잘 나타난다.
‘목숨 걸고’라는 말을 가장 많이 쓴 사람은 단연 박정희일 게다. 그는 목숨을 거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대담했다. 왜 박정희는 ‘목숨을 걸고’라는 말을 좋아했던 걸까? 물론 쿠데타는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다. 그러나 박정희는 그 이상이었다. 그는 그 말에 심취해 있었다. 그가 쿠데타에 성공하고 나서도 집권 기간 내내 중요한 국면마다 꼭 빠트리지 않고 해대는 말이 ‘목숨을 걸고’였다. ‘필사’, ‘결사’, ‘자결’ 등등 목숨과 관련된 단어들이 박정희의 입에선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박정희는 ‘목숨을 걸고’ 정권을 뒤엎었지만, 나중엔 ‘목숨을 걸고’ 정권을 지키고자 했다.
‘목숨 걸기’는 시대정신이었을까? 경부고속도로는 77명이나 되는 노동자의 생명을 희생으로 건설됐고, 전태일은 목숨을 바쳐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고발했다. 바로 이런 ‘목숨 걸기’가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과 더불어 가장 빠른 민주화를 이룬 동력이었음을 어찌 부인할 수 있으랴.
중고단행본
바보 빅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