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_ 17년 전 그날, 저희는 엄니와 살기 시작했지요
4월 불러도 불러도 질리지 않는 엄니
5월 17년 전 5월 31일, 저와 아내는 엄니와 살기 시작했지요
6월 큰 손주 성범이의 바지를 꿰매고 계시네요
7월 어릴 때 맹세했죠. 꼭 성공해서 모시겠다고요
8월 세상이 다 변해도 영원히 변치 않으실 엄니
9월 잠깐이지만 영원과도 같은 대화를 나눕니다
10월 떡 하나라도 더 먹이려고 애쓰셨던 당신입니다
11월 그 많은 계절마다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12월 큰 형님 아들이 장가갔네요
2010년 _ 오늘도 비틀비틀 배웅을 해 주십니다
1월 평생을 구멍가게에서 껌 하나 사 드신 적 없는 엄니!
2월 당신은 직원 한 분 한 분을 소중하게 대하셨습니다
3월 나중에 챙겨드리려 했는데 이렇게 가시다니요
4월 아직은 떠나시지 마세요
5월 세상에서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
6월 자신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쓰지 않으셨습니다
7월 장사가 안 되어도 기부는 해야 합니다
8월 살아계신 동안 아프지 마세요
9월 비틀비틀 걸으시며 배웅을 해주시네요
10월 그리운 고향산천
11월 가난은 나의 힘
12월 세상에서 제일 선한 눈빛으로
2011년 _ 엄니, 바느질을 멈추지 마세요
1월 책은 읽어야 알 수 있지만 엄니는 보고만 있어도 배우게 됩니다
2월 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드시는 엄니
3월 오늘따라 왜 이렇게 귀여우세요?
4월 엄니, 우리 꽃구경 가요
5월 뒤돌아보며 또 돌아보며
6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7월 엄니 아들이 또 상을 받았습니다
8월 강아지 나쵸와 장난을 치시네요
9월 엄니, 바느질을 멈추지 마세요!
10월 새벽부터 초밥 만드느라 전 직원이 바쁩니다
11월 보아도 보아도 또 보고 싶은 엄니
12월 살이라곤 없으시고 귀도 잘 들리지 않으시지만
2012년 _ 엄니가 하느님과 제일 친하니까요
1월 너무 아파 일을 못하겠어요
2월 엄니가 하느님과 제일 친하니까요
3월 당신에게 제일 슬픈 일은 제가 아픈 겁니다
4월 12살에 고향을 떠나와
5월 힘들었을 때의 추억은 왜 이리 생생하고 아련한지요
6월 무슨 듣고 싶은 말이라도 있으신지요?
7월 여름엔 민어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8월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사람이 그립습니다
9월 오늘은 또 어떤 숙제가 주어질까 생각합니다
10월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니까요
11월 휴지를 곱게 개고 계시네요
12월 우리 [어도]는 새벽부터 숨 쉽니다
2013년 _ 고향이 좋습니다. 고향 사람이 좋습니다
1월 20년 전 오늘, [어도]에서 처음 장사를 시작했지요
2월 고향이 좋습니다. 고향 사람이 좋습니다
3월 선생님들과 사진도 찍었습니다
4월 교회에 다녀오셨네요
5월 모든 걸 내려놓고 훌쩍 떠났으면 싶었지요
6월 버선은 왜 꿰매시나요?
7월 아내 친구들과 한잔하는 것도 좋네요
8월 치마를 바지로 만들어 입으시네요
9월 이 세상 모든 엄니는
10월 당신을 부르면 엄니가 대답하는 이 현실이 감사합니다
11월 합격 소식 전합니다
12월 장학금을 주는 저보다 받는 아이들이 더 대견합니다
2014년 _ 당신은 이제 한 살이십니다
1월 마음이 메마를까봐 하늘에서 눈을 내려주시네요
2월 한참을 울었습니다
3월 내가 먼저, 내가 좀 더
4월 어릴 적, 엄니를 살려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했었죠
5월 고려대 법학과 학생들, 이 젊은이들이 앞으로 정의를 세우겠지요
6월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게 장사 같습니다
7월 엄니가 끓여주신 닭죽 맛을 어찌 잊을까요
8월 지나온 힘든 과거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려봅니다
9월 2,000일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편지를 쓴 것은
10월 눈물을 흘리시며 돌아가신 아버지와 얘기를 나누시네요
11월 아침은 엄니로 시작됩니다
12월 당신은 한 살이십니다
2015년 _ 6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이 편지를 씁니다
1월 내 어릴 적 꿈은 소 사고 돼지 사는 것이었습니다
2월 마지막 예배가 아닌지요
3월 저라고 여행이 싫겠어요
4월 고향에 내려가 면민의 날을 치르고 돌아왔습니다
5월 23년 전 계절의 여왕, 5월에 결혼했지요
6월 심각한 표정으로 돈을 세시네요
7월 여름휴가, 30년 전에 가 보았네요
8월 고객님들, 너무 고맙습니다
9월 서울대병원과의 인연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0월 마침내 고향 효잔치가 열렸습니다
11월 술을 끊은 지 한 달 하고도 열흘 됩니다
12월 이 추운 날씨에 하나라도 더 팔고자 하는 분들을 봅니다
2016년 _ 살아 계셔서 고맙습니다
1월 [어도]는 다시 시작입니다
2월 102살 엄니를 오늘도 뵙니다
3월 엄니, 사랑합니다
배정철이 걸어온 길
‘어도 조리부장 배정철’, 아직도 이 직함을 사용하고 있는 저자는 1962년 전남 장성군 진원면 고산마을에서 3남 3녀의 막내로 태어나 4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12살 때 어머니와 함께 서울로 올라온다. 상계동의 세광고등공민학교를 다녔으나 가난 때문에 1년 만에 그만 두고 신문배달, 식당 일을 하며 부자가 될 꿈을 키운다. 항상 몸이 아프셨던 어머니를 평생 모시고 싶은 소망이 전부였던 어린 소년, 그 소망을 가슴 깊이 품고 밤낮없이 일하여 32살 되던 1993년에 일식당 [어도]를 강남구 논현동에 차린다. 365일 문을 열고, 최상의 재료를 쓰며, 고객 한 분 한 분에게 진심을 다해 다가가는 노력으로 가게를 키우고 결혼을 하고 마침내 태평양 너머 계신 어머니를 모셔오게 된다. 그후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수많은 곳에 기부를 시작한다. 그 결과 2002년에 대통령 표창(나눔과 봉사 부문), 2011년에 국민포장(나눔과 봉사 부문), 2011년에 아름다운 납세자상(국세청장) 등을 수상한다. 2013년에는 20여 년 동안 기부를 해 온 서울대학교병원 홍보대사로 위촉되었고, 2016년부터는 사단법인 다문화봉사회 회장직을 맡아 다문화가정이 이 땅에 뿌리내리도록 힘쓰고 있다.저자의 첫 저서인 이 책은 7년 간 하루도 빠짐없이 어머니에게 부친 손편지 2,554통을 간추려 엮은 것이다. 사적인 편지들이지만, 그 속에는 부모란 무엇인지 자식이란 무엇인지, 무엇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지 등이 가슴 뭉클하게 담겨 있다. 어릴 적 유일한 생계였던 고구마 밭의 고구마까지 이웃 노인분들에게 나눠 주신 어머니! 그렇게 아들에게 나눔의 정신을 물려주신 102세 되신 어머니와, 남편의 뜻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아내 김선미, 그리고 3남매와 함께 그는 살고 있다. 가난이 뼈아팠던 어린 소년,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게 평생의 소망이었던 그 소년은 지금 이 시간 [어도] 1호실에서 편지를 쓰고 있다. ‘엄니, 지금 뭐 하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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