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혁명가 안중근이 꿈꾼 세상
위대한 혁명가에게는 꿈이 있다. 단지 정권을 차지하려는 일차적 욕망에 사로잡힌 꿈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내 손으로 바꾸어 보겠다는 꿈, 세상을 변화시키고 일깨우겠다는 원대한 포부가 있다. 혁명가의 행동력은 바로 그 터질 듯한 꿈의 실현욕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안중근이 한국의 혁명가로 불려도 좋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단지 일제의 만행에 대한 분노 때문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것이 아니었다. 정권을 둘러싸고 이기적인 정치가 판치던 당시(?)의 사회 상황과 뻔히 보이는 외세의 침략을 눈앞에 보면서 그는 더이상 이 나라 이 땅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민족의 독립을 부르짖기 이전에 그는 민중을 변화시키고, 이 땅을 개혁하기를 원했다. 이 땅에 일본과 같은 개화의 물결이 넘쳐흐르고, 외국의 어느 나라 국민에게도 뒤지지 않는 교육 선진국을 꿈꾸었다. 그가 자신의 재산을 털어 진남포에 삼흥 학교를 세운 것은 바로 그의 혁명가로서의 첫발이다. 교육을 통한 변화에의 열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곧이어 외국인 신부들이 경영하던 돈의 학교까지 인수함으로써 그 반경을 넓혀 가게 된다. 그의 개혁 열기는 교육 사업에서 그치지 않았다. 교육 사업의 성과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이므로 일반 백성들을 제도하기에는 미흡한 것이 마음에 걸린 그는 각종 강연을 마다하지 않았고, 백성을 깨우는 일이라면 어디든 나섰다. 국채 모금 운동에 직접 뛰어들었으며, 언론 활동에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얼핏 보기에 국권 회복을 위한 일련의 일들이라고 보이는 그의 활동들이 그 밑바탕에는 개혁적 성향을 띠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그의 이런 개혁 성향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는 설령 주권을 일본에 빼앗기지 않은 상황에서도 충분히 개혁의 노선을 걷는 혁명가가 되었을 법한 인물이었다. 생각이 나면 그 즉시 행동에 옮겨야 하는 그의 행동파적 성격, 다혈질적인 면모가 우선 그를 혁명가의 길로 이끌고, 어렸을 때부터 접한 신학문의 세계가 그를 개혁파의 길로 인도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의 부친 안태훈 역시 젊었을 때부터 개화파와 어울려 개혁을 꿈꾸던 인물이었다. 김옥균 등이 3일 천하로 개혁의 꿈이 꺾였을 때 그는 몹시도 안타까워했다. 수구파의 눈을 피해 천봉산 산골에 은둔해 살면서 비록 신앙 생활로 자신의 꿈을 접었지만, 부친의 영향은 고스란히 아들인 안중근에게 전수되었다. 한마디로 그는 산속에서 호연지기를 키우면서 자신의 뜨거운 심성을 고스란히 키울 수 있었고 부친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으로 성장해 갈 수 있었던 것이다.
2. 혁명가 안중근에게 있어서의 신앙
'한국의 혁명가 안중근'의 세계로 들어가 보면 그에게서 신앙의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찍이 부친이 천주교에 입교함으로써 그 역시 어린 시절부터 신앙에 몸담게 되는데, 이 신앙이 그의 일생을 통해 끊임없이 극복해야 할 문제로 제기되는 것이다. 그가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가 사형을 앞두고 자신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 깊은 신앙심을 재차 확인하게 된다. 다음은 그가 부인에게 보낸 편지 내용의 일부이다. ─ 우리들은 이 이슬과도 같은 허무한 세상에서 천주의 안배로 배필이 되고, 다시 주의 명으로 이에 헤어지게 되었으나 또 머지않아 주의 은혜로 천국 영복의 땅에서 영혼에 모이려 하오. … 장남 분도를 신부가 되게 하려고 나는 마음을 결정하고 믿고 있으니 그리 알고 반드시 잊지 말고 특히 천주께 바치어 후세에 신부가 되게 하시오. 허다 만 말은 후일 천국에서 기쁘게 만나서 상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을 믿고 또 바랄 뿐이오. 1910년 경술 3월 24일 자신의 아이를 신부가 되게 하려는 생각을 할 만큼 그의 신앙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독실한 신앙심과 그의 혁명가적 성향 사이에는 어떤 함수 관계가 존재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말한다면, 신앙심은 그의 혁명적 성향에 있어서 물인 동시에 불이었다. 신앙이 그의 의지를 밀고 나갈 수 있었던 힘이 되어 준 반면, 그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번민의 요소였던 것이다. 안중근은 어려서부터 신앙에 입문함으로써 누구보다 일찍 신문명에 눈뜨고 개혁의 흐름을 탄 셈이었다. 그가 스승처럼 믿고 따랐던 홍 신부는 프랑스인으로서 안중근이 직접 체험할 수 없는 외국의 문화를 이야기해 주었고, 안중근은 조선인들도 그와 같이 살아야 한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신앙이 그에게 개혁을 향한 꿈을 열어 준 것이다. 그러나 그가 진정 개혁을 향해 행동으로 옮기고자 할 때에는 신앙이야말로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그가 교육 사업에 대한 열망을 안고 민 주교를 찾아갔을 때, 그는 그 외국인 신부에게서 차가운 대답을 듣는다. “학문에 열중하면 신앙에 소홀해질 수가 있으니 교육은 필요 없다.”가 바로 그것이었다. 걸림돌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후일 의병 활동을 하고자 할 때도, 거사를 일으키려 할 때도 신앙은 끊임없이 그를 시험하듯 달려들었다. 행동하는 혁명가 안중근에게 항상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은 천주님께 맡겨라.” 그는 신앙에서 힘을 얻으면서도 끊임없이 신앙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찌 보면 그것은 외국인 신부들과의 차별성, 즉 이민족은 진정으로 우리 민족을 도울 수 없다는 ‘민족 자존 정신’으로 이어지는 길을 열어 준 셈이었다. “하느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그럴수록 이 말이 신앙처럼 되어 갔고, 그는 천주에게 모든 것을 맡기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혁명을 향해 뛰어듦으로써 신앙을 극복해 나갔던 것이다. 이처럼 '한국인 혁명가 안중근'은 이제껏 간과해 왔던 문제들을 예리하게 짚어 나가고 있다.
3. 사실적이고도 극적인 묘사
'한국인 혁명가 안중근'의 매력은 안중근이 혁명가로서 재조명된다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저자 송원희의 힘차고도 극적인 구성에서 그 힘을 받는다. 첫 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바람소리가 독자의 귓가를 울린다. 기울어져 가는 나라의 비운의 소리가 생생한 청각적 효과를 드러냄으로써 먼저 독자에게 호기심을 부여하고 극적인 효과를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그 효과는 한 페이지씩 책장을 넘길 때마다 점차 고조되어, 마침내 책의 중반에 이르면 한 세기를 거슬러 진행되는 이야기가 마치 지금 이 순간 벌어지는 이야기처럼 가슴을 두드리고 눈시울을 벌겋게 만든다. 안중근이 다시 한 번 살아나 우리의 가슴에 뜨거운 불길을 당기는 순간이다. 그러나 이야기가 단순히 극적인 묘사에만 그친다면 그것이 여느 허구적인 소설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한국인 혁명가 안중근'은 객관적이고도 치밀한 자료가 그 뒤를 힘있게 받쳐 주고 있어서 새로운 혁명가의 전기를 만들고 있다. 책 사이사이마다 자연스럽고도 풍부하게 녹아 있는 자료들도 묘미를 한껏 돋운다. 안중근의 시와 편지는 그의 문학성과 기개를 독자에게 세심하게 보여 주는 양념으로써의 구실도 한다. 이 한 권의 책을 읽음으로써 가슴에는 정열을 다시 지피고, 역사에 대한 인식을 바로세우며, 위인전이야 뻔하지 하는 인식에의 전환을 기대해 봄 직하다.
중고단행본
바보 빅터
